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3 리 (문단 편집) == 상세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M3 lee cutaway.jpg|width=100%]]}}} || || '''M3 리 내부 도면''' || 유럽에서 세계대전이 벌어지자 전화가 자국에 미칠 것을 우려한 [[미 육군]]은 전력을 증강하면서 자국의 기갑부대를 점검했는데, 당시 보유하고 있던 [[M2 전차|M2 중형전차]]는 주포가 37mm인데다가 차체도 리벳 접합, 기관총이 둘려쳐진 기동 벙커 컨셉인 등 이미 시대에 뒤쳐져있던 것이 판명되었다. 이에 세계의 흐름에 맞춰 보다 강력한 [[75mm 전차포 M2–M6|75mm 주포]]를 장착한 전차를 개발하려 했으나 당시 [[미국]]의 기술로 75mm 포를 포탑에 달 수 있을지 미지수였기 때문에[* 당시는 [[대공황]]으로 유명한 경제난이 덮쳐 있었기에 군용 프로젝트에 들어갈 자금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M2 전차를 주력으로 굴리고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 크고 무거운 중전차는 생산 및 유지에 돈이 많이 들어가니 가볍고 옮기기 좋은 전차를 쓰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쨌든 당장 급하니까 제대로된 75mm 전차포를 장착한 전차가 완성될 때까지 땜빵용으로 차체에 75mm 포를 단 전차를 먼저 개발하자!"'''하고 만든 것이 M3 중형전차다. 채용 당시부터 '''대체제식병기'''로 분류될 정도로 급하게 만든 소방수였던 것이다. 이 75mm M2/M3 전차포는 운용초기 문제가 많았는데 여기서 미국이 얼마나 전차에 대한 개발 경험이 부족했는가를 엿볼 수 있다. 우선 조준경이 포에 붙어 있는 것이 아닌 잠망경이 포에 연동되는 형식이었는데 문제는 포가 움직일 때 제대로 연동되지 않았다. 더불어 전차 포탄에 대한 개발 경험도 부족하여 포탄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특히 바닥이 부드러운 사막에서 고폭탄 신관이 작동하지 않아 폭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신관의 모양이 문제였으며, 영국 군인들은 프랑스제 75mm 포탄의 신관을 떼어다 붙여서 해결 하였고, 철갑탄은 전차에 탄착하면 붕괴되어 노획한 4호 전차의 탄두로 바꿔다 끼워 사용하였다. [[피모철갑탄]]과 신형 고폭탄이 보급되면서 이 문제들은 모두 해결되었지만 조종수가 사용하는 차체 전면 하부의 고정식 기관총 등 쓸데없는 구조[* 미국의 이러한 설계는 [[스튜어트 전차]]부터 [[M4 셔먼]]까지 이어졌고, 이것이 쓸모없다고 판단을 내린 후에는 추가 생산분에는 이를 생략하거나 이미 만들어진 차량에는 용접이나 마개를 달아 막았다.]가 있었다. 이렇게 M3를 개선한 경험들은 셔먼 전차에도 적용해 동일한 문제들을 고칠 수 있었다. 일단 75mm급 포를 다는 것이 시급했기 때문에 차량 자체는 이전의 M2 중형전차의 확대판인데다가 차체는 M2에 쓰이던 그대로 리벳과 볼트, 너트 방식이 섞인 구식 조립방식을 사용했다. 그리고 주포의 장착위치나 방식 등은 프랑스의 [[르노 B1]]을 참고하였다. 전차 자체 모양은 1938년에 제작한 T3 HMC와 유사했다. 그러나 차체에 포를 도입하는 방법 덕분에 설계도 일사천리로 이뤄졌으며 거기에 [[미군/물량|미국의 우월한 생산력이 더해져]] 이 땜빵용 전차는 순식간에 6,258여대가 생산된 후 [[영국]]에 [[무기대여법|랜드리스]]로 2,855대가 이송됐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전차였긴 하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영국군]][* 미국은 아직 참전하지 않았고, 영국은 주문 당시 [[됭케르크 철수작전]]이 벌어졌으며, [[영국 본토 항공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북아프리카 전역]]에서는 [[에르빈 롬멜]]이 이끄는 [[독일 아프리카 군단]]의 진격이 시작되던 상황에 설상가상으로 기껏 만든 [[크루세이더 전차|크루세이더]]로 대표되는 [[순항전차]]들은 독일군의 [[3호 전차]]가 쏘는 [[PaK 36|37mm 포]]에도 간단히 관통됨과 동시에 과열로 쉽게 퍼져나갔으며, [[마틸다 II]]로 대표되는 [[보병전차]]들은 독일군의 일반적인 대전차포들을 간단히 튕겨내어 순항전차보단 뛰어났지만 이 두 전차를 포함한 '''모든 전차들의 포 구경이 고폭탄, 작약이 없는 40mm급 2파운더에 머물러서 화력면에선 아주 열세였다.''' 거기다가 제대로 된 전차를 만드는 데 실패해서 당시 소련의 T-34나 독일의 4호 전차 같이 후에 균형 잡힌 성능을 지닌 전차를 보유하질 못했다.]이기에 M3 리를 약간 개량하는 작업이 있었다. 상세히 설명하자면 영국군은 기관총이 달린 전차장용 전망탑(큐폴라)을 제거하는 대신 37mm 포용 포탑의 크기를 키우고 장갑을 강화했다. 그리고 연막탄을 설치하고, 무전수를 없에고 무전기를 포탑 뒤로 옮기는 등 영국군 운용 방식에 부합하게 만든 차량이 바로 '''그랜트'''(Grant)다. 리와 반대로 북군 장군 [[율리시스 S. 그랜트]]의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차체에 달린 75mm 주포는 선회반경이 제한되어있어 운용에 애로사항이 꽃폈고,[* [[헐 다운]]도 거의 불가능해서 언덕 위에 올라가야 했다. 게다가 높은 차체 시너지까지 합하면 최악의 운용 조건을 지닌다.] 선회포탑에 달려있는 37mm 부포는 성능은 동급 화포중에서 3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우수하지만, 이미 이 시점쯤 되면 [[붉은 여왕 효과|상대방 전차들의 장갑이 강화되는 바람]]에 [[3호 전차]] 후기형의 경우 정상적인 교전에서 격파가 불가능할 지경이고 [[4호 전차]]를 상대로도 무리가 따르기 시작하며 사실상 무용화되었다. 덤으로 리벳으로 조립된 차체는 피탄시 경우에 따라서는 리벳이 파손되어 전차가 혼자 분해되는 등 문제가 많았다. 게다가 차체가 크고 높은 데다가 37mm 포를 얹은 포탑 위에 기관총탑 겸 전차장용 전망탑까지 있어 높이가 너무 높았다. 이는 이 전차가 본질적으로 땜빵이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었으며, 이미 75mm 주포를 선회포탑에 제대로 장착한 전차인 [[M4 셔먼]]이 양산 직전에 있었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적절한 시점에 등장했기에 개발 당초의 목적이던 '다음 주력전차가 등장할 때까지 시간을 벌고 데이터를 쌓는다'는 목적을 달성하는데는 성공했고 소방수로써 북아프리카 전역의 급한 불을 끈 전차다. 급조된 차량이었고 전차 설계에 노하우가 부족한 미국이 설계상 부족한 면모를 드러내기는 했으나, 한편으로 성능은 그리 나쁘지 않았고 신뢰성도 좋았다. 그래서 [[르노 B1|B1 전차]]와 더불어 [[다포탑 전차]]나 다주포 전차 중에서는 그나마 밥값을 한 얼마 안 되는 전차로 꼽히기도 한다. 차체 왼쪽 하단에는 조종수용 전방 고정형 기관총이 2정 있었으나, 전방 고정형이라는 한계상 이걸로 뭘 맞추기도 어려운데다, 따로 사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안그래도 손이 바쁜 조종수가 조작해야 했기에 사실상 장식이었다. 결국 전차가 생산된지 얼마 되지 않아 기관총 수를 하나로 줄였고, 최종적으론 모두 제거하고 기관총구에 마개를 넣어 막았다. 이는 [[스튜어트 전차]] M3형과 [[M4 셔먼]] 초기형, [[T-44]]와 [[T-54]] 초기형에도 있던 설계미스였고 모두 비슷한 조치가 취해졌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Fort_Bliss_Museum_M3_Lee.jpg|width=100%]]}}} || || '''기관총탑이 제거된 M3 리''' || 또한 일부 M3 리의 경우 전차장용 전망탑을 겸하는 기관총탑이 안그래도 높은 전고를 더 높혔기 때문에 기관총탑 자체를 제거하고 잠망경식 관측창으로 변경한 사례도 많았다.[* 주로 호주군의 차량들이 이러한 개조를 받은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기관총은 37mm 부포탑에 설치된 [[공축기관총]] 1정 뿐이었으며, 그랜트의 경우 아예 기관총탑 없이 공축기관총만 장착된 상태로 출고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